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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TV에도 나온 40년 전 춘천 함지 레스토랑에서의 돈까스 후기

by 시골쥐 2022.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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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부터 춘천 함지 레스토랑에 돈가스를 먹으러 가자고 벼르고 별러서, 서울서 오는 이모는 지하철을 타고, 나는 차를 가지고 남춘천역 앞에서 만났다. 이모와 나는 40년 전에 함지 레스토랑에서 돈가스를 먹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춘천 함지 레스토랑의 추억

1. 40년 전 춘천 함지 레스토랑

함지 레스토랑이 생겼을 당시에는 춘천에서는 닭갈비집이 성업을 이루고 있을 때였다. 닭갈비 한대에 70~80원 했었던 것 같은데... 춘천 명동 뒷골목에서 닭갈비 몇 대와 소주 한 병 시켜놓고 수다를 떠는 게 일상이었던 춘천에 레스토랑이 생긴 것이다. 레스토랑이라고 하면 운동복 입고 편하게 떠들던 닭갈비집 하고는 달리, 옷도 단정히 정장을 해야 하고 꽤나 폼 잡고 우아한척하면서 미팅이나 선을 보러 가는 고급진 식당이었다. 그 당시 작은 체구의 주인아저씨가 신사복을 입고 멋지게 서빙해주는 멋진 레스토랑이 생겨서 춘천의 품격이 한층 올라갔다고 좋아했었는데 말이다. 나는 함지 레스토랑에서 이런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내가 친구에게 점심식사를 내기로 한날, 나는 돈가스를 시키고 그 친구에게는 비프커틀릿을 시키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 너 돈 없구나? 내가 어떻게 비프커틀릿을 먹겠니? 나도 돈가스 먹을래~" 가격차이 얼마 안 났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그때의 민망함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함지하면 그 생각이 젤 먼저 난다.

함지레스토랑 테이블 세팅 모습


2. 오늘의 춘천 함지 레스토랑

함지 레스토랑 아래쪽에 농협이 있다. 토요일이라 농협 주차장에 차를 잘 세워두고 함지 레스토랑을 찾았는데, 상가건물 1층에 있는 강원천막사가 40년 전 그대로 있었다. 란제리 할인매장도 4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있어서 정말 놀랬다. 건물 외관은 너무도 낡고 허름한데 2층 함지 레스토랑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너무 깔끔하고 깨끗했다. 문 열고 들어서는 순간, 카운터에 앉아계신 등이 굽고 머리숱이 없으신 그 분이 옛날 그 신사복의 주인아저씨란 것을 금방 알아보았다. 추억의 그 민망한 돈가스를 두 개 시키고 둘러보니 레스토랑은 빈 좌석이 없이 나이 든 손님으로 꽉 차있고, 실내는 40년 전 그대로의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조그만 방 세 개도 그대로 있어 한꺼번에 40년 전의 모든 기억이 살아남을 느끼게 되었다. 함지 레스토랑은 주인아저씨와 함께 손님도 실내도 깨끗하게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곱게 늙어만 가고 있었다. 예전에 내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어떻게 한 남자하고 몇십 년을 사니? 생각만 해도 지겨워~" 함지 레스토랑은 어떻게 그 긴 세월을 지키고 살았을까? 지치지 않음이 존경스럽다.

함지 레스토랑의 돈가스

3. 춘천 함지레스토랑 돈가스 후기

테이블 세팅도 그때 그 모습이다. 흰 테이블보에 사각형 빨간 보가 크로스로 단정히 올려져 있고 종이로 된 일회용 매트에 포크 나이프 세트도 그때 그 모습으로 미리 놓여 있었다. 서빙은 나이 드신 남자분이었는데 사장님과 마르고 단정한 모습이 너무도 닮아 동생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 했다.
1) 제일 처음으로 크림수프가 흰색 커다란 둥근 접시에 나와서 숟가락으로 얼른 퍼 먹었다. 크림수프 모양도 맛도 40년 전 그대로다.
2) 따뜻한 타원형 모닝빵이 잼과 버터가 넣어진 작은 그릇과 함께 나왔는데 그것도 금방 다 먹어치웠다.
3) 작은 그릇에 샐러드도 나왔는데 소스는 달고 새콤한 레몬향이었다. 그리고 김치, 흰색 단무지가 나오고
4) 커다란 메인 접시에는 돈가스가 큼지막하게 앉아 있었고 옥수수알에 전분 넣어 쫀쫀하게 만든 것과 감자 삶아 으깬 것, 브로콜리가 곁음식으로 있었다. 고기도 좋은 것을 사용하는지 잡내가 없고 두툼하다. 먹는 동안엔 아무 생각 없이 입속에서 느껴지는 향과 질감, 맛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소스 한 방울 안 남기지않고 금방 다 먹어버렸다.
5) 후식으로 나온 검은 커피는 설탕을 한 티스푼 넣어 마셨다. 매번 이런 커피는 맛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함지 커피는 달지도 않고 설탕 한 스푼이 쓴맛을 중화시켰는지 의외로 너무 맛있었다.


4. 그 많은 청춘들은 어디서 늙어가고 있을까?

커피 마시면서 정신 차리고 꼼꼼히 내부를 보았다. 내가 40년 전에 친구와 앉아있었던 창가 그 자리의 민망함, 단체 미팅 때 들어가 앉았던 작은방의 기억, 남학생 앞이라 부끄러움에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들어갔던 그때의 깨끗하고 작은 화장실도 그대로였다. 다 그대로여서 건망증에 치매가 아닐까 고민하던 내게 물밀듯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미팅에서 만났던 킹카 남학생은 키도 크고, 잘생기고, 똑똑해 보였던 두꺼운 안경테의 그 남학생은...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자기의 중학교 은사님과 결혼을 해버려 너무 놀랬었다. 빠른 발령이라도 여자 선생님이 7살은 많았을 텐데... 지금이야 인터넷이 발달하여 연하 남자와 결혼한 얘기 너무도 많이 알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그렇게 40년이 지났다. 그때 흐르는 바람처럼 춘천의 온거리를 쓸고 다니던 그 많은 청춘들은 어디서 늙어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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